한국 영화를 꽤 챙겨본다고 자부했는데, 박정민이라는 배우는 이 영화 전까지 제 레이더에 잘 안 잡혔습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을 보고 나서야 "이 배우 이름을 왜 지금 알았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날 이후 박정민 필모그래피를 역주행하게 됐습니다. 이 영화는 웃기고 뭉클한 동시에,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경험 자체가 콘텐츠가 되는 드문 작품입니다. 배우 케미: 이병헌과 박정민이 만났을 때 일반적으로 투톱 구도의 영화는 두 배우 중 한 명이 상대적으로 묻히기 쉽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영화는 달랐습니다. 이병헌이 연기 내공으로 공간을 채우는 동안, 박정민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그 공간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두 배우가 서로를 잡아먹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교환하듯 에너지를 주고받는 장..
1,600만 관객. 한국 코미디 영화 역대 최고 흥행 기록입니다. 솔직히 처음 이 숫자를 봤을 때 반신반의했습니다. 근데 막상 보고 나니 수긍이 갔습니다. 영화를 평소에 잘 안 챙겨보는 저도 이건 중간에 멈추질 못했거든요. 위장수사, 시작부터 예상을 빗나가다 혹시 형사물이라고 하면 어떤 장면이 먼저 떠오르십니까? 긴박한 추격전, 심각한 표정의 형사들, 극적인 반전. 그런데 극한직업은 시작부터 이 공식을 완전히 뒤엎습니다. 기상 관측 111년 만의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한 날, 마약반이 공들여 준비한 추격전은 16중 추돌사고로 허무하게 끝나버립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이미 예감했습니다. '이 영화, 보통이 아니겠구나'라고요.잠복수사(潛伏搜査)란 수사관이 신분을 숨기고 범죄 현장에 잠입해 증거를 수집하는 ..
어렸을 때 본 설국열차는 그냥 사람들이 기차 안에서 치고받는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다시 봤을 때,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계급, 부패,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 온 역사의 단면이 기차 한 칸 한 칸에 촘촘히 담겨 있었으니까요. 기후 재앙과 설국열차, 설정이 허구가 아닌 이유 영화의 출발점은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입니다. 지구온난화란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축적되어 지구 표면 온도가 장기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살포된 물질이 바로 CW-7인데, 이 냉각제가 예상치 못한 반작용을 일으켜 지구 전체를 영하 수십 도의 빙하기로 만들어버립니다. 결과적으로 살아남은 인류는 윌포드가 설계한 무한동력 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