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2만 명. 2009년 개봉한 영화 '해운대'가 기록한 관객 수입니다. 처음 이 숫자를 봤을 때 솔직히 놀랐습니다. 재난 영화가 그것도 한국을 배경으로 이 정도 흥행을 했다는 게 쉽게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꺼내 봤는데, 결말을 알면서도 심장이 쪼여드는 느낌은 여전했습니다. 아는 결말인데도 이렇게 긴장이 된다는 게, 이 영화가 단순한 스펙터클 이상의 무언가를 건드리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 쓰나미, 남의 나라 얘기일까요 영화 속 지질학자 김 박사는 줄곧 경고합니다. 한국도 쓰나미(Tsunami)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쓰나미란 해저 지진이나 화산 폭발 등으로 발생하는 대규모 해일을 뜻하는 일본어 기원의 국제 용어입니다. 그런데 극 중 재난 방재청은 그 말을 흘려듣습니다. 처음엔 그냥 ..
2014년 개봉한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는 거친 사채업자가 순수한 사랑을 배워가는 이야기입니다. 황정민이라는 배우 하나만으로 영화 전체가 살아 숨 쉰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하며 틀었다가, 결말에서 눈물을 꽤 훔쳤습니다. 멜로드라마를 잘 안 보는 편인데도 그랬습니다. 태일이라는 인물, 어디서부터 이해해야 할까 태일은 사채(私債)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사채란 제도권 금융기관이 아닌 개인이나 비공식 조직이 고금리로 빌려주는 돈을 뜻하는데, 쉽게 말해 법 밖에 있는 대출 시장입니다. 태일이 하는 일 자체는 분명히 나쁜 일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이상하게도 이 사람이 싫어지질 않습니다. 왜일까요?그 이유가 뭔지 저도 곱씹어봤는데, 결국 태일은 하는 일과 사람 자체가..
어렸을 때 본 설국열차는 그냥 사람들이 기차 안에서 치고받는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다시 봤을 때,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계급, 부패,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 온 역사의 단면이 기차 한 칸 한 칸에 촘촘히 담겨 있었으니까요. 기후 재앙과 설국열차, 설정이 허구가 아닌 이유 영화의 출발점은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입니다. 지구온난화란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축적되어 지구 표면 온도가 장기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살포된 물질이 바로 CW-7인데, 이 냉각제가 예상치 못한 반작용을 일으켜 지구 전체를 영하 수십 도의 빙하기로 만들어버립니다. 결과적으로 살아남은 인류는 윌포드가 설계한 무한동력 기차..
역사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 역사 시간이 되면 교과서 펼치기도 전에 졸음이 쏟아졌고, 그 결과가 쌓여 강제 유학까지 가게 됐습니다. 그런 저를 영화관에서 자리를 고쳐 잡고 앉게 만든 영화가 바로 왕과 사는 남자였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력과 조선 역사의 민낯, 그리고 권력과 정의에 대한 질문이 110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계유정난, 역사 속 권력 찬탈의 민낯 계유정난(癸酉靖難)이란 1453년 수양대군이 무력으로 조정을 장악하고 어린 단종의 측근 세력을 제거한 정변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왕의 삼촌이 조카의 왕권을 빼앗기 위해 일으킨 쿠데타입니다. 1452년 왕위에 오른 단종 이홍이의 나이는 고작 12세였고, 이듬해 이 정변이 일어나면서..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그냥 "흔한 멜로 아닐까" 하고 큰 기대 없이 틀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판타지적 설정 위에 가족의 사랑을 얹은 작품으로, 보고 나면 부모님께 전화 한 통 하고 싶어지는 영화입니다. 줄거리: 비가 오면 엄마가 돌아온다 이 영화의 전제가 처음엔 다소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죽은 엄마가 장마철에만 기억을 잃은 채 돌아온다는 설정인데, 현실적으로 말이 되냐고 물어보신다면 당연히 안 됩니다. 하지만 이 판타지적 장치(Fantastical Device), 즉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을 이야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만드는 서사 도구가 오히려 감정의 문을 더 활짝 열어줍니다. 쉽게 말해 말도 안 되는 설정이 오히려 ..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사람, 아직도 기억하고 계십니까? 저는 그때의 설렘이 뭔지 몰랐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달랐습니다. 영화 너의 결혼식은 그 감정을 너무 정확하게 짚어냈습니다. 이별 직후에 봤는데도 설렘이 느껴졌다면, 그게 바로 이 영화가 잘 만들어진 이유 아닐까요. 너의 결혼식 줄거리, 어떤 영화인가 너의 결혼식은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닙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한 남자의 첫사랑이 어떻게 이어지고 또 어떻게 어긋나는지를 담담하게 따라갑니다. 주인공 우연은 원래 매일 싸움에 휘말리던 학생이었는데, 전주에서 강릉으로 전학 온 승희를 만나면서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랑이 사람을 바꾼다는 말, 이 영화를 보면 그냥 공허한 말이 아니라는 게 느껴집니다.승희는 첫 만남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
솔직히 저는 멜로 영화를 보면서 운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어차피 해피엔딩이겠지'라는 생각으로 감정 이입을 차단하는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2011년 개봉한 영화 '오직 그대만'을 보면서 그 공식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소지섭과 한효주, 두 배우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제가 로맨스 장르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을 정면으로 깨뜨렸습니다. 첫 만남이 특별한 이유,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멜로 영화의 첫 만남은 '운명적인 충돌' 혹은 '우연한 마주침'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달랐습니다. 주차 요원으로 일하는 철민에게 정화가 먼저 간식을 건네며 다가오는 장면, 언뜻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안에 이미 두 인물의 성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정화는 철민이 자신의 지인..
솔직히 저는 타짜 시리즈를 챙겨볼 생각이 없었습니다. 1편의 명성이 워낙 강해서 후속작들이 그 그늘에 가릴 거라 짐작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타짜3를 보고 나니 예상과는 다른 감정이 남았습니다. 완벽한 작품은 아니지만, 도박판이라는 세계가 이렇게 흡입력 있게 그려질 수 있다는 게 새삼 신기했습니다. 공시생이 타짜가 된다는 설정, 생각보다 설득력 있었습니다 처음 주인공 일출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으로 등장할 때, 저는 조금 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밑바닥 청년이 도박판에 빠지는 이야기구나'라고 가볍게 봤는데, 영화를 보면서 점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일출이 단순히 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의 패턴을 읽어내는 독해력 자체가 남다른 인물이라는 게 드러나거든요.포커판에서 상대의 블러핑(b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