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 영화를 보면서 역사를 배울 수 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범죄와의 전쟁은 단순한 느와르(noir)가 아닙니다. 느와르란 범죄, 배신, 도덕적 모호함을 중심에 두는 장르를 뜻하는데, 이 영화는 거기에 1980년대 한국의 실제 역사까지 정교하게 얹어놓습니다. 어렸을 때 처음 봤을 때는 담배 연기와 욕설 사이에서 뭐가 뭔지도 몰랐는데, 다시 보고 나서야 이게 단순한 건달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족보와 권력, 지금이라면 통할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를 다시 보면서 주인공 익현이 자신의 집안과 족보를 무기처럼 휘두르는 장면을 볼 때마다 지금 시대 기준으로는 "그게 뭐 어쩌라고"라는 반응이 나올 법한 상황들이 연속으로 펼쳐집니다. 그런데 영화 속 1982년 부산에서는 그게 실제로..
2009년에 개봉한 영화 '전우치'가 613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그것도 그해 '아바타'가 극장을 장악하던 시절에 말입니다. 저는 그때 중학생이었는데, 지금 다시 떠올려도 그 영화관의 열기가 생생합니다. 팝콘 냄새, 꽉 찬 좌석, 그리고 스크린을 가득 채운 도술 장면들. 판타지라면 사족을 못 쓰는 제가 그 당시 본 영화 중 가장 재밌었다고 기억하는 작품입니다. 아바타와 맞붙은 한국형 판타지의 배경 2009년이 어떤 해였는지 기억하십니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바타'가 전 세계 극장을 휩쓸던 그 해, 국내에서는 전혀 다른 결의 판타지 영화가 조용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바로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입니다. 당시 '셜록 홈즈'까지 개봉한 쟁쟁한 경쟁작들 사이에서 613만 관객을 동원했..
영화관에서 중간에 화장실을 한 번도 안 간 게 언제였는지 기억하시나요? 저는 박훈정 감독의 를 처음 봤을 때가 딱 그랬습니다. 느와르, 액션, 판타지가 한 영화 안에 다 들어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자리에서 꼼짝도 못 하고 봤습니다. 지금도 마녀 시리즈는 저한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영화입니다. 자윤의 정체, 처음부터 숨겨진 복선들 영화 초반을 보면 솔직히 "이 영화가 뭘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목장 배경에 평범해 보이는 고등학생, 거기에 뜬금없이 오디션 프로그램까지. 그런데 뒤로 갈수록 그 모든 장면들이 왜 있어야 했는지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자윤이 겪는 두통과 뇌 관련 자료 수집 장면은 단순한 설정이 아닙니다. 여기서 나오는 개념..
역사에 관심 없는 사람도 이 영화 앞에서는 눈물을 참기 어렵습니다. 1,4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은 1950년대 흥남 철수부터 파독 광부, 베트남 파병, 이산가족 찾기까지 한 남자의 일생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그려냅니다. 저는 이 영화를 필리핀에서 혼자 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화면 속 덕수와 제가 처한 상황이 묘하게 겹쳐 보였거든요. 흥남 철수, 화면 밖에서도 느껴지는 무게감 역사 시간에 이름만 들어봤던 흥남 철수 작전(興南撤收作戰)을 혹시 기억하시나요? 흥남 철수 작전이란 1950년 12월 한국전쟁 당시 함경남도 흥남 부두에서 약 10만 명의 피난민을 미군 함정에 태워 남하시킨 대규모 민간인 구출 작전입니다. 영화는 바로 이 장면으로 포문을 엽니다.어린 덕수가 아버지 손을..
1,600만 관객. 한국 코미디 영화 역대 최고 흥행 기록입니다. 솔직히 처음 이 숫자를 봤을 때 반신반의했습니다. 근데 막상 보고 나니 수긍이 갔습니다. 영화를 평소에 잘 안 챙겨보는 저도 이건 중간에 멈추질 못했거든요. 위장수사, 시작부터 예상을 빗나가다 혹시 형사물이라고 하면 어떤 장면이 먼저 떠오르십니까? 긴박한 추격전, 심각한 표정의 형사들, 극적인 반전. 그런데 극한직업은 시작부터 이 공식을 완전히 뒤엎습니다. 기상 관측 111년 만의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한 날, 마약반이 공들여 준비한 추격전은 16중 추돌사고로 허무하게 끝나버립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이미 예감했습니다. '이 영화, 보통이 아니겠구나'라고요.잠복수사(潛伏搜査)란 수사관이 신분을 숨기고 범죄 현장에 잠입해 증거를 수집하는 ..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불쾌하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 몰랐습니다. 막상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불쾌한 게 아니라, 불편한 거였습니다. 내 안에 있는 뭔가를 건드려서 눈을 돌리고 싶어지는 그 느낌. 기생충은 그런 영화입니다. 계급과 빈부격차, 그리고 행복의 기준에 대해 이 영화만큼 날카롭게 찌른 작품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계급은 사라진 게 아니라 이름만 바뀐 것 '직업에 귀천은 없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그 말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그 반대의 현실이 있다는 걸 증명한다고 봅니다. 군대처럼 공식적인 계급 구조는 사회에서 많이 사라졌지만, 사실 이름만 다르게 불릴 뿐 여전히 존재합니다.사회학에서는 이것을 ..
1,132만 명. 2009년 개봉한 영화 '해운대'가 기록한 관객 수입니다. 처음 이 숫자를 봤을 때 솔직히 놀랐습니다. 재난 영화가 그것도 한국을 배경으로 이 정도 흥행을 했다는 게 쉽게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꺼내 봤는데, 결말을 알면서도 심장이 쪼여드는 느낌은 여전했습니다. 아는 결말인데도 이렇게 긴장이 된다는 게, 이 영화가 단순한 스펙터클 이상의 무언가를 건드리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 쓰나미, 남의 나라 얘기일까요 영화 속 지질학자 김 박사는 줄곧 경고합니다. 한국도 쓰나미(Tsunami)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쓰나미란 해저 지진이나 화산 폭발 등으로 발생하는 대규모 해일을 뜻하는 일본어 기원의 국제 용어입니다. 그런데 극 중 재난 방재청은 그 말을 흘려듣습니다. 처음엔 그냥 ..
2014년 개봉한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는 거친 사채업자가 순수한 사랑을 배워가는 이야기입니다. 황정민이라는 배우 하나만으로 영화 전체가 살아 숨 쉰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하며 틀었다가, 결말에서 눈물을 꽤 훔쳤습니다. 멜로드라마를 잘 안 보는 편인데도 그랬습니다. 태일이라는 인물, 어디서부터 이해해야 할까 태일은 사채(私債)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사채란 제도권 금융기관이 아닌 개인이나 비공식 조직이 고금리로 빌려주는 돈을 뜻하는데, 쉽게 말해 법 밖에 있는 대출 시장입니다. 태일이 하는 일 자체는 분명히 나쁜 일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이상하게도 이 사람이 싫어지질 않습니다. 왜일까요?그 이유가 뭔지 저도 곱씹어봤는데, 결국 태일은 하는 일과 사람 자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