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를 파낸다는 뜻의 '파묘(破墓)'라는 단어를 영화 제목으로 처음 봤을 때는 이게 무슨 장르인지 감도 안 잡혔습니다. 귀신 영화인지, 역사 영화인지. 그런데 개봉 일주일 만에 수백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자 궁금증이 폭발했고, 결국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이걸 진작 봤어야 했는데." 파묘가 뭔지도 모르고 봤습니다 파묘(破墓)는 한자 그대로 묘를 파헤친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해 이미 묻힌 무덤을 다시 꺼내는 행위인데, 이 자체가 무속 신앙에서는 굉장히 조심스럽고 금기시되는 일입니다. 저는 파묘라는 행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영화를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드라마나 뉴스에서 들어본 적도 없었고, 당연히 관 아래에 또 다른 관이 있을 수 ..
한국 영화를 꽤 챙겨본다고 자부했는데, 박정민이라는 배우는 이 영화 전까지 제 레이더에 잘 안 잡혔습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을 보고 나서야 "이 배우 이름을 왜 지금 알았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날 이후 박정민 필모그래피를 역주행하게 됐습니다. 이 영화는 웃기고 뭉클한 동시에,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경험 자체가 콘텐츠가 되는 드문 작품입니다. 배우 케미: 이병헌과 박정민이 만났을 때 일반적으로 투톱 구도의 영화는 두 배우 중 한 명이 상대적으로 묻히기 쉽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영화는 달랐습니다. 이병헌이 연기 내공으로 공간을 채우는 동안, 박정민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그 공간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두 배우가 서로를 잡아먹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교환하듯 에너지를 주고받는 장..
마녀 1편을 보고 나서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녀 2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건 예상 밖의 설렘이었습니다. 과연 1편의 충격을 넘어설 수 있을까, 아니면 속편의 흔한 함정에 빠지지 않을까. 그 궁금증을 안고 봤던 마녀 2 리뷰를 지금부터 풀어보겠습니다. 마녀 2 줄거리, 어디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가 마녀 2는 1편과 세계관을 공유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인물과 사건으로 이야기를 열어갑니다. 처음에는 미영이라는 인물이 회사 관광 중 낯선 곳으로 납치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제가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는 '이게 마녀 세계관이랑 어떻게 연결되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꽤 좋았습니다.이야기의 핵심은 아크(ARC) 연구소..
죽을 때마다 하루 전으로 되돌아간다. 이게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핵심 설정인데,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저는 "그게 뭐가 힘들어?"라고 생각했습니다. 넷플릭스를 뒤적이다 우연히 집어든 영화였는데, 막상 보고 나서는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죽음을 반복해야만 강해질 수 있다는 설정이 이렇게까지 긴장감 있게 다가올 줄은 몰랐습니다. 타임루프, 능력인가 형벌인가 영화의 배경은 미믹(Mimic)이라 불리는 외계 종족이 지구를 침략한 미래입니다. 미믹은 단순한 괴물 무리가 아닙니다. 이들 전체를 통제하는 사령관 격 존재인 오메가(Omega)가 있고, 오메가는 전장의 흐름을 미리 파악해 인류의 전략을 번번이 무력화시킵니다. 오메가란 쉽게 말해 미믹 전체의 두뇌이자 신경망 중추로, 이 존재를 제거..
저는 이 영화를 처음에 그냥 잘생긴 배우들 모아놓은 볼거리 영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조인성에 정우성, 김아중까지 한 화면에 담겨 있으니 내용이 좀 허술해도 눈이 즐거우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기대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이 영화가 제 예상보다 훨씬 깊은 곳을 건드리고 있었습니다. 검찰과 권력의 민낯을 이렇게 코미디처럼, 하지만 섬뜩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게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반칙 수준의 캐스팅, 그런데 그게 전략이었다 조인성이라는 배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저는 솔직히 말문이 막힙니다. 키도 크고, 얼굴도 되고, 연기도 되는데 여기에 정우성까지 붙여놨으니 이건 정상적인 캐스팅이 아닙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는 "이 두 사람이 같은 화면에 있으면 이야기가 묻히는 거 아닐까"라는 걱정..
영화를 보다가 진짜 경찰이 되려면 규칙을 잘 따르는 사람이어야 할까, 아니면 규칙을 어기더라도 사람을 먼저 구하는 사람이어야 할까, 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2017년 개봉한 영화 '청년 경찰'은 그 질문에 꽤 묵직하게 답합니다. 코미디 영화인데 보고 나면 웃음보다 생각이 더 많이 남더라고요. 연기력 — 박서준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된 계기 박서준 배우는 이미 '이태원 클라스', '김비서가 왜 그럴까', '쌈 마이웨이' 같은 작품들로 충분히 증명된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또 다른 결을 보여줍니다. 경찰대생이라는 역할 자체가 어설프고 치기어린 면이 있어야 하는데, 그 어설픔을 연기로 표현하는 게 사실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캐릭터의 자연스러운 어색함을 연기력으로 구현해내는 것,..
억울하게 누군가의 잘못을 뒤집어쓴 경험, 한 번쯤 있으시지 않습니까. 저도 작은 오해 하나로 한동안 마음이 시커멓게 탔던 적이 있는데, 그때 이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2013년 개봉해 천만 관객을 돌파한 '7번방의 선물'은 지적 장애를 가진 아버지 용구가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류승룡의 열연이 없었다면 이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깊이 박혔을까 싶습니다. 누명과 강압 수사, 용구에게 벌어진 일 딸 예승이에게 세일러문 가방을 사주려다 오해에 휘말린 용구의 상황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 서 있었습니다. 사건의 피해자 아버지가 경찰청장이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는데, 감정적으로 무너진 권력자가 수사 과정에 직접 개입하면서 이른바 강압 수사(coercive investigation..
북한 군인이라고 하면 감정도 없고 오직 세뇌만 된 존재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정말 그게 맞는 걸까요?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한 편이 그 생각을 완전히 흔들어 놓았습니다. 2013년 개봉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원류환이라는 인물을 통해 제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얕은 판단이었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바보 동구 뒤에 숨겨진 정체성 영화의 주인공 원류환은 9년간의 혹독한 특수훈련을 마치고 남한 달동네에 단독 침투한 공작원입니다. 그런데 그가 맡은 임무가 참 독특합니다. 총 들고 싸우는 게 아니라 콧물 자국에 슬리퍼 끌고 다니는 동네 바보 '동구'로 살아가는 것이죠. 이른바 잠복 공작(深伏 工作), 즉 장기간 위장 신분을 유지하며 적진 내부에서 활동하는 방식입니다..